사우디아라비아 여성 운전 금지의 과거와 폐지 과정을 중동의 모순에서 해방으로 여성의 핸들 잡기까지의 여정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성 운전 금지의 뿌리 – 문화와 종교의 얽힘
유일무이한 세계의 금지 정책
한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을 법적으로 금지했던 국가였습니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여성의 운전이 불법으로 규정된 사례는 없었고, 이 법은 국제 사회에서 사우디의 성평등 문제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사우디의 여성 운전 금지는 명확하게 성문화된 법조항이 있다기보다는 종교적 해석, 문화적 금기, 사회 규범이 뒤엉킨 비공식적 제도였습니다. 여성은 운전 면허를 받을 수 없었고, 도로에서 운전하다 적발될 경우 체포되거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교통 문제를 넘어선 여성의 사회 활동, 자율성, 인권 전반을 통제하는 상징적인 장치였습니다.
이슬람 율법 해석의 영향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기반한 체제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종교국가입니다. 특히 **와하비즘(Wahhabism)**이라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이슬람 교리가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여성의 역할은 가정 중심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해석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일부 성직자들은 “여성이 운전을 하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난다”는 논리로 금지를 정당화했습니다. 심지어 “운전이 여성의 난소에 영향을 미쳐 출산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비과학적 주장도 공공연히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여성 운전은 신체의 자유와 성적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통제 수단이었습니다.
운전 금지의 사회적 구조
사우디 여성들은 이동 시 항상 남성 보호자(마흐람)의 동행이나 운전기사를 고용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경제적 비용과 생활 제약이 컸습니다. 이 제약은 여성의 교육, 취업, 자립을 구조적으로 가로막는 장벽이었고, 여성은 가정과 사회에서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감시받는 존재’**로 남게 되었습니다.
금지에 맞선 여성들의 저항과 변화의 물결
1990년, 최초의 항의 시위
여성 운전 권리를 위한 투쟁은 수십 년 전부터 조용히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 11월, 수도 리야드에서는 47명의 사우디 여성들이 차량을 운전해 시내 도로를 질주하는 대담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교육받은 전문직 여성들이었고,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며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고, 참가 여성들은 곧 체포되어 여권을 압수당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가혹한 보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위는 사우디 여성 인권 운동의 상징적 시발점이 되었고, 그 뒤를 잇는 여성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우먼2드라이브(Women2Drive)’ 운동
2011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전개된 ‘우먼2드라이브’(Women2Drive) 캠페인은 사우디의 여성 운전 금지 정책에 다시 한 번 강력한 도전을 던졌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아랍의 봄이 일어나며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던 시기, 사우디 여성들도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운전 영상을 공유하며 금지법에 저항했습니다.
이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자 활동가인 **만랄 알-샤리프(Manal al-Sharif)**는 자신이 운전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이로 인해 체포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체포는 오히려 운동에 더 큰 불을 붙였고, 국제 사회도 사우디 정부에 압박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사우디 내부 변화와 ‘비전 2030’
운전 금지 철폐의 결정적인 계기는 **사우디 정부의 대대적인 개혁 정책 ‘비전 2030’**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의 주도 아래,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조개혁과 함께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여성의 취업률과 경제 활동 참여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동의 자유 보장이 필수적이었고, 이에 따라 여성 운전 금지라는 상징적 제약부터 해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왕세자의 주도로 보수 성직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이 추진되었고, 전례 없는 속도로 사우디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운전 허용 이후, 그 의미와 남은 과제
2018년 6월 24일 – 역사적 해방의 날
마침내 2018년 6월 24일, 사우디 정부는 여성의 운전을 공식적으로 허용했습니다. 여성들은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자신의 차량을 직접 운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여성이 이날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달리는 모습은 세계 언론의 1면을 장식하며 큰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차량 운전 허용을 넘어 여성의 자율성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동안 여성들에게 금지되었던 영역들이 하나씩 열리기 시작했고, 사우디 사회는 유례없는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는 아직 진행 중
하지만 법적 허용이 곧 현실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여전히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달갑게 보지 않으며, 여성 운전자에 대한 비난이나 도로상 차별도 존재합니다. 또한 운전면허를 신청하기 위한 행정 절차, 사회적 시선 등은 여성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여성운전운동을 주도했던 활동가들 중 일부는 법이 바뀐 이후에도 여전히 투옥 상태이거나, 사회에서 배제된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개혁의 한계와 이중적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앞으로의 과제
사우디 여성의 운전은 첫 단추일 뿐, 진정한 평등을 이루기 위한 길은 아직 멀었습니다. 여성의 여행 허가제(남성 보호자 승인제도) 폐지, 혼자서 여권 신청 가능 여부, 취업 선택의 자유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제도적 장애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운전 허용은 단단히 닫혀 있던 성평등의 문을 여는 시발점이었고, 이를 통해 사우디 여성들은 점점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동 전역의 여성 인권 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변화를 이끄는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핸들 위에서 피어난 자유의 상징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운전 금지 철폐는 단순한 법률 변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억압된 자유의 회복이자,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여성들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 모습은 수십 년간 이어져온 제약과 모순을 넘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우디 여성의 운전은 이제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자율성, 독립성, 그리고 변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들이 달리는 도로는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