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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도 자유가 없다? - 프랑스에서 아이 이름을 마음대로 못 짓는 이유

by 부자MS 2025. 5. 16.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원하는 이름을 자유롭게 지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예쁜 의미를 담은 이름, 때로는 가족의 전통을 따르는 이름, 혹은 개성 넘치는 독특한 이름을 짓기도 하죠.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아이 이름을 마음대로 지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부모가 지은 이름이 법원에 의해 거부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왜 프랑스는 이름 짓기에 이토록 엄격할까요? 단지 특이하거나 발음이 어려워서? 아니면 더 깊은 이유가 있을까요? 오늘은 프랑스의 독특한 이름 관련 법과 그 배경, 실제 사례들, 그리고 문화적 맥락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름에도 자유가 없다? - 프랑스에서 아이 이름을 마음대로 못 짓는 이유

프랑스의 ‘이름 규제법’은 어떻게 작동할까?

법적으로 ‘이상한’ 이름은 금지된다

프랑스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출생신고할 때 정부가 이름을 심사합니다. 원칙적으로는 부모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이름이 아이의 복지를 해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이 이름 사용을 거부하거나 변경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1993년 프랑스 민법 개정을 통해 공식화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심지어 정부가 제공하는 이름 목록에서만 골라야 할 정도로 제한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목록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공공의 이익’과 ‘아이의 이익’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됩니다.

판단 기준은? ‘조롱거리’가 될 가능성

프랑스 법원이 이름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이름이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될 때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 이름이 욕설이나 저속한 표현일 때
  • 유명 인물과 동일하거나 부적절한 인물 이름일 때 (예: 히틀러, 나폴레옹 등)
  • 이름 자체가 조롱거리, 놀림 대상이 될 수 있을 때
  • 일반 명사, 브랜드명 등을 그대로 사용했을 때

이러한 기준은 다소 주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결국 법원은 ‘그 이름이 사회에서 문제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를 판단의 핵심으로 삼습니다.

법원이 개입하는 과정

출생신고 시 등록 담당자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검찰에 보고됩니다. 검찰은 이를 가족법원에 회부하고, 법원은 부모의 의사를 듣고 심사 후 이름을 거부하거나 허용합니다. 경우에 따라 부모가 항소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법원의 결정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름 거부된 사례들 – 현실에 있었던 놀라운 이야기

프랑스에서는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지어준 이름이 법적으로 거부되거나 강제로 변경된 사례가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화제가 되었던 사례들을 살펴보면, 왜 이런 법이 생겼는지 조금 더 실감할 수 있습니다.

‘누텔라(Nutella)’ – 초콜릿 이름을 아이에게?

2015년, 프랑스 북부의 한 부부는 딸의 이름을 ‘누텔라’로 지으려 했습니다. 누텔라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초콜릿 스프레드 브랜드죠. 부모는 이 이름이 귀엽고 독특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법원은 “이 이름은 아이가 조롱당하거나 놀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이름 사용을 불허하고 아이의 이름을 ‘엘라(Ella)’로 변경했습니다.

‘프리즈비(Frisbee)’ – 장난감 이름도 안 돼!

또 다른 사례로, 부모가 아이의 이름을 ‘프리즈비’로 지으려 했던 경우가 있습니다. 프리즈비는 던지고 받는 장난감 이름인데, 이 역시 법원은 “사회적 부적절성”을 이유로 이름을 거부했습니다. 실제로 이 이름은 일반 명사이자 브랜드명이므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그웬달피카(Gwenyldphika)’ – 너무 복잡한 이름도 문제?

프랑스에서는 발음하기 어렵거나 철자가 복잡한 이름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2022년에는 한 부부가 브르타뉴 지방 언어에서 유래된 전통적이지만 복잡한 이름을 아이에게 주려 했지만, 당국은 “너무 어려워서 아이가 불편을 겪을 수 있다”며 이를 권장하지 않았습니다.

‘미니쿠퍼(Minicoupère)’ – 자동차 이름도 NO

한 부모는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 브랜드 이름을 딸의 이름으로 지으려 했습니다. ‘미니쿠퍼’는 귀엽고 세련된 이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프랑스 법원은 브랜드명을 아이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보았고, 이 이름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문화다 – 프랑스의 법이 말해주는 가치

이처럼 프랑스에서 이름을 자유롭게 짓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그들이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와 문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그 핵심은 ‘아이의 권리 보호’와 ‘공공의 질서 유지’에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선택할 수 없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의 선택이 아이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부모의 자유보다, 아이가 향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불편과 위험을 우선시합니다.

이는 단순히 ‘국가의 간섭’이 아니라, 아이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성’보다 ‘사회적 조화’를 중요시

프랑스는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문화적 기반이 강합니다. 모든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칙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독특한 이름이나 눈에 띄는 이름이 때로는 사회적 조화를 해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이는 법적으로 제재를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말투나 호칭에서도 드러납니다. 프랑스 사회에서는 존댓말(tutoiement vs vouvoiement)의 구분, 공식적 예의 표현을 매우 중요시하며, 지나치게 캐주얼한 언어 사용도 불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 이름 역시 이 같은 ‘공식성과 조화’의 범주 안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

프랑스의 이름 규제는 다소 강경한 편에 속하지만,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일부 유사한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에서는 ‘국가 승인 리스트’에 없는 이름은 등록할 수 없고, 독일도 아이 이름에 성별이 드러나야 하며 직업명이나 브랜드명은 금지됩니다.

반면, 미국이나 한국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지만, 한국도 2000년대 이전에는 한자 제한이 있었고, ‘건전치 못한 이름’은 거절될 수 있었습니다. 즉, 이름을 둘러싼 사회적 기준은 각 나라의 문화와 법제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름은 단지 이름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아이 이름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이름이 이상해서’가 아닙니다. 이는 아이의 미래, 사회와의 관계, 공공의 질서 등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한 제도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과도해 보일 수 있지만, 프랑스 사회는 이를 통해 아이를 보호하고, 사회적 조화를 이루려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어지는 사회적 정체성입니다. 부모의 창의성과 개성도 중요하지만, 그 이름이 평생을 따라다닐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